글을 꿈꾸던 학생, 다시 글을 쓰는 성우가 되다
목소리로만 저를 접하신 분들은 “글도 써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성우라는 꿈을 꾸기 전, 고등학생 때 가졌던 꿈이 글을 쓰는 일이었어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중간에 꿈을 변경하게 된 경우였죠.
《알라딘》에 참여한 뒤 씨네21과 인터뷰를 하면서 원래 꿈이 작가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기자님이 나중에 빅이슈 편집장이 되셨고, 당시 이야기가 기억나 연락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저도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던 때라 한 달에 한 번씩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고가 쌓이자 편집장님이 책으로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렇게 첫 번째 에세이집 《목소리가 하는 일》이 나왔고, 약 2년 뒤에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전하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너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도록》을 쓰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글은 계속 쓰려고 해요.
제가 상념을 글로 정리하려 했던 건 그 일이 연기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에요. 저의 중심과 뼈대가 되는 일은 언제나 성우라고 생각하고, 평생 성우로 일하고 싶어요. 글쓰기는 곁길로 빠지는 일이 아니라 성우로서의 일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문예반에서 준비한 문학제였습니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에서 외화를 더빙해 주는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저는 영화와 성우들의 목소리를 좋아해서 빠짐없이 챙겨봤어요. 라디오를 듣다가 성우들이 출연하는 KBS 무대를 알게 됐고, 문학제에서 짧은 라디오 드라마를 라이브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제안하고 직접 글을 써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작가와 성우를 동시에 경험한 첫 순간이었어요.
성우가 되어 간 것은 작은 발걸음의 연속이었다
문학제 작업이 저에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그때는 제가 약간 천재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춘문예에 내거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쓰려고 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라고요. 지역 대회에서는 어렵지 않게 입상했지만 서울의 큰 대회에 나가 보니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요. 처음으로 큰물의 모습을 보고 벽을 느꼈죠. 글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시작하지도 않은 작가 활동을 혼자 절필해 버렸습니다.
별생각 없이 인문학부에 진학했고 대학 1학년 때는 많이 방황했어요. 어느 동아리에도 잘 속하지 못하다가 친구를 따라 대학 방송국 시험을 보게 됐습니다. 문학제 경험도 있었고 성우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왔으니 직접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실기 반응이 괜찮아서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하게 됐고, 뉴스와 드라마를 경험하면서 제가 몰랐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글을 쓸 때처럼 더 큰 곳에서 다시 벽을 만나면 어떡하나 두려웠어요. 내가 과연 목소리로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는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성우 지망생 모임에서 활동했습니다. 가족은 제 성격이 안정적인 직업을 택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자기 엉뚱한 일을 하겠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기에, 몇 살까지 되지 않으면 돌아오겠다는 선을 정한 뒤 성우 지망생이 됐습니다.
미도리야와 함께 자신의 개성을 찾아가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가 더빙되던 때는 제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었어요. 당시 제가 주목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성우들과 조금 다른 면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소리가 완전히 잡혀 있다기보다 밋밋하고 앳된 느낌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콤플렉스로 생각했거든요.
미도리야는 이벤트 형식의 시청자 투표와 PD의 의견을 합쳐 캐스팅됐습니다. 다른 작품에서 제 목소리를 들은 팬분들이 추천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제가 가장 오랫동안 녹음한 작품이 됐어요.
저는 작품을 만화책으로 먼저 봤는데, 성우라는 직업을 떠나 캐릭터 자체에 많이 몰입했습니다. 미도리야는 모두가 ‘개성’이라 불리는 능력을 가진 사회에서 능력 없이 태어났다고 믿으면서도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에요. 그 성장 과정을 보며 동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전속 성우에서 프리랜서가 되기 직전, 제작팀장님이 제게 목소리의 개성을 잘 개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보다 특색이 적고 쉽게 묻힌다는 이야기였죠. 어떻게 해야 제 목소리의 개성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고민이 미도리야와 많이 겹쳐 보여서, 캐스팅된 뒤 작품을 하면서 오히려 더 놀랐어요. 이런 캐릭터가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생각했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미도리야는 긴 시간 동안 계속 벽에 부딪히고 그 벽을 깨며 성장했어요. 마지막 녹음을 모두 마친 뒤 쫑파티에서, 우라라카 역을 맡은 윤미나 선배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감수성이 있고 여리고 섬세한 표현을 잘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성우라고 생각했지만, 미도리야는 안에 있는 들끓는 용암 같은 히어로에 대한 열정을 폭발시키고 힘껏 외쳐야 하는 열혈 캐릭터의 면도 있어서 제가 그 부분까지 소화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고요. 사실 그 부분은 저도 처음에 걱정했습니다. 기술 이름을 힘껏 외치는 연기도 정말 많이 연습했어요. 마지막 녹음을 마치고 나니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습니다. 다른 어떤 작품보다 여운이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에요.
소가 발견해 준 낯선 목소리
소가 저에게 이렇게 큰 존재감으로 남는 역할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게임 녹음은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현장에서 대본을 받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캐릭터 설명과 일러스트, 세계관에서의 역할을 잠깐 살펴보고 먼저 녹음된 다른 언어의 목소리를 참고한 뒤 시작합니다.
제작진이 소의 원형으로 제시한 역할은 《신의 탑》의 쿤 아게로 아그니스였어요. 다만 소가 가진 처연함과 마음의 무게는 훨씬 깊고 무거웠습니다. 저는 조금 더 미소년 같은 느낌이 어울릴 거라 생각했지만, 제작진은 계속 낮은 톤을 요구했어요. 완성된 그림을 보지 못한 상태라 이 목소리가 정말 캐릭터에 붙을지 확신할 수 없었고, 제작진을 믿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PV가 공개된 것을 보니 이전의 연기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부분이 제 목소리에서 개발된 것 같았어요. 듣는 분들도 그렇게 느껴주셔서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저는 변성기가 뚜렷하지 않아 어린아이 같은 소리가 콤플렉스였고, 고등학생 때부터 목소리를 낮고 굵게 만들려고 연습했어요. 성우가 된 뒤에는 원래 톤보다 낮게 내려고 하던 나쁜 습관을 교정했고, 처음에는 소년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그러다 《괴물의 아이》의 소년 큐타와 청년 큐타 양쪽 모두 오디션을 봤고, 소년 큐타는 MBC의 김서영 선배님이, 청년 큐타는 제가 맡았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청년 역할로 범위를 넓혔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치아키를 거쳐 소를 만났습니다.
소는 소년 역할의 심규혁과 청년 역할의 심규혁 사이에 비어 있던 부분을 채워준 인물이에요. 제가 가진 줄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고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깨게 해줬습니다. 이런 배역을 만나는 건 귀하고 드문 경험이에요. 앞으로도 저의 새로운 면을 발굴해 주는 캐릭터를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오랜만에 PV의 댓글을 다시 봤어요. 소 때문에 《원신》을 시작했고, 소를 통해 저를 좋아하게 됐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에게 정말 감사한 캐릭터예요. 소를 사랑해 주신 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소의 목소리를 잘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불안을 없애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법
2022년에 첫 책 《목소리가 하는 일》이 나왔고, 2024년에 두 번째 책 《너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도록》이 출간됐어요. 작가를 병행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시작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일기를 쓰고 메모를 많이 남긴 이유를 파고들어 보면 결국 불안이었습니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탈출구였던 것 같아요.
2020년에 10년 차 성우가 됐어요. 신인 때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잘된 모습인데도 제 자리가 굳건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우는 과거에 작품을 얼마나 했든 계속 일해야 수입이 생겨요. 몸이나 목이 좋지 않아 섭외에 응할 수 없게 되면 그 순간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죠. 일도 꾸준히 일정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을 때는 몰리고 없을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를 반복합니다.
아내는 성우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12년이 걸렸어요. 아내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노하우를 계속 메모하고 전달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아내보다 제가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내의 꿈이 접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죠. 첫 아이가 생기고 육아가 시작되자, 제가 보탬이 되겠다며 애쓰는 일이 오히려 아내에게 부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했어요. 일기 말고 무엇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다 에세이 수업을 들었습니다. 육아가 시작되니 시간은 부족했고,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신인 때는 어떻게 해야 연기하면서 떨지 않을 수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시간이 지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익숙해지면서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그때부터는 매너리즘과 싸워야 했습니다. 불안이 없어지면 관성대로 가는 것은 아닌지, 나를 측정할 기준 없이 더듬는 느낌과 다시 싸워야 했죠.
결국 중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불안과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것이었어요. 문제와 갈등과 불안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 자체가 허상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열정을 가질 수도 있어요. 부정적으로 보이는 감정도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불안을 없애려고 지나치게 애쓰다가 회피하거나, 자신을 너무 채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인물의 형체를 드러낸다
목소리가 어떤 물질이라면, 존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잖아요. 첫 책을 쓸 때 목소리는 어쩌면 투명인간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투명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밀가루나 물을 뒤집어쓰면 갑자기 형체가 드러납니다. 좋은 성우는 그 투명인간의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보이도록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인물이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우와 배우는 비슷한 연기를 하지만 작업 방식과 필요한 능력은 많이 달라요. 비슷한 종목처럼 보여도 사용하는 근육이 다른 셈이죠. 성우에게는 깊이뿐 아니라 즉흥성과 순발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제작해야 하는 환경이 많기 때문이에요.
외우지 않았는데 외운 것처럼, 읽고 있는데 읽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전달하는 것이 성우에게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게임 녹음에서는 현장에 도착해 처음 대본을 보고, 콘티에 들어갈 목소리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분석해야 하죠.
텍스트를 가지고 많이 놀아봐야 해요. 농구 선수나 축구 선수가 공을 자기 몸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하듯, 성우에게는 텍스트가 공과 같습니다. 저도 신인 때는 순발력이 좋은 편이 아닌 것 같아 당황했지만, 그런 능력도 단련되고 훈련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결국 텍스트를 얼마나 깊고 많이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본기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답보다 자신의 기준을 찾는 일
베테랑이나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보면 어떻게 저기까지 갔을까,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직업에 맞는 사람일까 하는 고민이 들 수 있어요. 지망생들에게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도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작품이 들어오면 아내가 “저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내가 열심히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대단한 성우가 되어 전설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연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습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더 잘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무리 잘된 사람이 이야기해도 그 말은 참고서일 뿐입니다. 결국 주교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에요. 다른 사람의 말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얼마나 더 잘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정의에 책임지는 것이 중요해요.
저도 언제까지 성우 생활이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애쓰고 있어요.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저도 녹음실에서 열심히 버틸 테니, 지금 성우를 준비하는 분들도 잘돼서 녹음실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에게 맞는 방식의 삶, 그리고 기록
처음 성우를 해볼까 생각한 것은 대학 1학년 2학기에 대학 방송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부터였어요.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저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성우가 된 것이 아니라 작은 발걸음들이 쌓여 이 직업으로 이끌려 왔기 때문에 아마 비슷한 길을 다시 갈 것 같습니다.
꿈꾸던 성우의 삶은 생각과 같지 않았어요. 작품이 어느 정도 쌓이면 편해질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은 없고, 계속 노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이런 방식의 힘듦이 저에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탄하고 반복적인 일을 경험해 보니 오히려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저를 깨어 있게 하고 살아 있게 하는 부분이 있어요. 계속 불안하고 두려워도 저에게 맞는 방식의 고통이기에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10년 뒤에 이 영상을 보게 된다면, 지금 기록을 남긴 것이 좋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글도 이 순간에 써놓지 않으면 당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불안과 기쁨 속에 있었는지 잊어버리잖아요. 이 인터뷰도 제 일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6년 동안 성우로 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대본 분석과 훈련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제 목소리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어요. 청취자와 시청자, 팬분들은 제 호흡과 숨 같은 존재입니다. 제 목소리를 듣고 위로받았다거나 응원이 된다고 말해주시는 모든 분께 늘 감사해요.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소통을 많이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멈췄던 유튜브와 자주 올리지 못했던 SNS 활동을 다시 시작하려 해요. 지망생들에게 제가 연기하며 쌓은 노하우를 나누기 위한 온라인 클래스도 열었습니다. 오늘 인터뷰 역시 그런 흐름의 일부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많이 응원해 주시고, 저도 여러분을 많이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