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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리익숙한 목소리 너머,
새로운 연기를 향해

전해리는 19년 차 성우이자 배우다. 중학생 시절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준 애니메이션과 성우를 따라 이 일을 꿈꾸기 시작했고, EBS 성우가 된 뒤 전국 영어 듣기평가와 《오버워치》의 아테나, 《일하는 세포》의 내레이션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되었다.

《주토피아》의 주디 홉스는 전해리를 대중에게 알린 첫 주연이었고, 《사이버펑크 2077》의 V와 《트릭컬 리바이브》의 뮤트는 연기의 폭을 넓혀주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신데렐라와 《젠레스 존 제로》의 프로미아를 통해서는 서브컬처 팬 문화의 열기와 캐릭터를 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만났다.

마흔을 넘긴 뒤에는 대학원에서 연기를 다시 공부하며 무대와 매체 연기에 도전했다. 몸과 표정, 감정까지 캐릭터 안에 녹여내기 위해서다. 익숙한 목소리로 기억되는 일에 감사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다.

애니메이션에 위로받던 학생이 마이크 앞에 서기까지

어린 시절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저의 외로움을 위로해주고 함께해준 것이 애니메이션이었고, 그 속의 성우분들이었거든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같은 직업을 꿈꾸게 됐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작품을 보고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좋아하던 성우분들이 나온 대학에 진학해 연기를 연습했고 성우 학원에는 3년 정도 다녔습니다. 스물다섯 살에는 오디오북과 드라마 전문 회사에서 공부했고, 1년 뒤 EBS 성우가 됐어요.

고등학교 때 연극 활동을 하며 느낀 매력도 있었고,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외형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의 매력도 있었어요.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성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전에는 무엇이든 짧게 하다 금방 지루해하거나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을 느꼈는데, 연기를 공부하면서는 지금 잘하지 못하더라도 나아지고 싶고 오랫동안 붙잡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일을 제 일로 가져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어요. 성우는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캐릭터를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표현이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공부하며 제가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자존감이 많이 부족한 아이였어요. 소심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제가 하는 일이 맞는지 계속 의심하며 혼자 위축된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아요.

마이크 앞에 서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녹음된 제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게 내 목소리야? 내가 알던 내가 아닌데?’ 싶을 만큼 당황했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계속 녹음하고 들으면서 목소리를 포함한 저 자신을 받아들이게 됐고, 이제는 제 목소리가 아주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의 표정과 입 길이에 대사를 어떻게 맞출지만 계산했어요. 현장에서 계산이 조금만 어그러지면 계속 NG가 났습니다. 요즘은 기술적인 계산보다 캐릭터와 작품의 세계관을 충분히 이해해야 더 편하고 깊게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연습하고 있어요.

영어 듣기평가와 아테나, 익숙한 목소리가 되다

영어 듣기평가는 EBS 성우였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전부터 EBS 선배님들이 해오던 일을 이어받았고, 일정도 잘 맞아서 15년 가까이 참여했습니다. 오랫동안 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제 목소리라는 걸 알았던 건 아니에요. 10년쯤 지나 “전해리 성우가 영어 듣기평가 목소리래”라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알아봐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듣기평가 녹음에는 외국인 성우와 전국 시도교육청 관계자분들도 함께합니다. 1년에 두 번씩 뵐 때마다 제 목소리가 신뢰감 있고 편안하게 들린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정보 전달과 캐릭터 연기를 오갈 때 특별히 정해둔 기준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내레이션에서는 멋있게 꾸미기보다 제가 화자가 되어 내용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 했던 것 같아요.

《오버워치》의 아테나는 제 음성이 가진 힘으로 만난 역할에 가까워요. 게임 내내 곁에서 안내하기 때문에 목소리의 색이 너무 강하면 플레이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해요. 감독님은 제 목소리가 게임 안에 편안하게 묻어나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뒤로 비슷한 내레이션형 캐릭터를 꽤 맡게 됐습니다.

《일하는 세포》에서도 저를 내레이션 캐릭터로 캐스팅해주셨는데, 작품을 들은 분들이 영어 듣기평가가 떠오른다고 해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어요. 같은 정보 전달이라도 작품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요. 게임에서는 비서처럼 곁에서 돕되 승리와 패배 같은 정보가 확실히 들려야 하고, 《일하는 세포》에서는 어려운 의학 용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듣기 쉽게 귀에 안겨드려야 했습니다.

내레이션을 잘하는 성우로 자리를 잡았느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더 잡고 싶어요. 생각하시는 만큼 많이 하지는 않거든요. 더 많은 캐스팅 연락을 주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내레이션을 굉장히 사랑해요.

주디 홉스와 함께 쌓인 시간

주디 홉스는 성우 전해리의 인생에서 굉장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저를 알아봐 주시는 대다수의 분이 아는 역할이 《주토피아》의 주디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그전까지 디즈니 작품에서는 작은 역할을 맡았고, 주디는 제대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첫 주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주디를 만났을 때는 제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캐릭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디션 때도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합격해 받은 대본 대부분이 제 대사라서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작품의 성공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주디가 제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캐릭터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닉을 연기한 정재헌 선배님의 공도 굉장히 커요. 닉과 주디의 호흡을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고,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관 GV에도 함께 가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프리랜서 초년생이라 그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도 잘 몰랐어요. 디즈니 작품은 한 명씩 따로 녹음하기 때문에 실제로 대사를 주고받지 못합니다. 상대가 어떻게 말했을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PD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 몫을 다하면, 완성된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쾌활하고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편견과 유리천장에 맞서는 주디에게 많이 공감했어요. 그런데 2편을 만나며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차별에 맞서던 주디 자신도 닉을 ‘위험한 여우’라는 편견으로 바라봤어요. 그 사실을 깨닫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성장합니다. 작품의 큰 구조와 주디 내면의 구조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 건 아니었어요. 작품이 쌓이고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알아봐 주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주디 이후에는 남자아이와 센 언니, 악당 같은 역할도 하고 싶다고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향한 길도 열렸어요.

V와 뮤트, 원하는 목소리의 폭을 넓히다

《사이버펑크 2077》의 V처럼 강단 있고 고뇌에 찬 주인공을 맡은 적은 그전까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계속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디즈니 작품을 함께했던 감독님이 오디션을 제안해주셨고, 제 목소리가 제작사가 생각한 V와 잘 맞았던 덕분에 역할을 맡게 됐어요.

대본에는 거친 욕설이 많아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V가 못된 사람이어서 욕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2077년의 세계가 열악하고 고된 삶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죠. 초기 녹음을 들은 분들은 욕이 너무 우아하고 어색하다고 하셨지만, 뒤로 갈수록 걸쭉해졌다는 칭찬을 들었어요. 희한하게 기쁘더라고요. 점점 발전하는 과정을 보며 희열도 느꼈습니다.

V는 플레이어가 오랫동안 함께해야 하는 주인공이라 너무 모나거나 센 부분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두 달 가까이 하루 세 시간씩 녹음하며 기업·스트리트·노마드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한 챕터 안에서 오가야 했습니다. 점차 기업 출신은 차갑고 영리하게, 스트리트 출신은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며 차이를 만들어갔어요. 지금도 V에 대한 애정은 굉장히 큽니다.

《트릭컬 리바이브》의 뮤트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차갑고 도도한 캐릭터라고 설명돼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 도도하고 차갑고 섹시하게 준비해갔는데, 현장에서는 빵떡 같은 얼굴에 어울리게 연기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차갑고 도도한데 이 얼굴에 맞춰야 하느냐고 되물었을 만큼 고민이 많았습니다.

귀여운 얼굴에서 가능한 차가움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준비한 목소리와 캐릭터의 얼굴을 계속 맞춰보며 조금 더 어리고 조인 소리로 가달라는 피드백을 받았고, 나른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어린 왕자》의 장미와 《사이버펑크 2077》의 V,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의 클로이처럼 이전에 맡았던 인물들이 섞여 뮤트로 이어졌고, 이후의 차가운 캐릭터들로 갈 수 있는 길이 된 것 같아요. 많은 운과 노력이 그 길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신데렐라와 프로미아, 새로운 팬 문화와 만나다

《승리의 여신: 니케》 오디션에서는 제작진이 중요하게 준비하던 신데렐라를 제안해주셨는데, 저는 예쁜 캐릭터보다 나쁜 언니나 악당이 있으면 오디션을 보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녹음하는 동안 신데렐라가 2주년의 중요한 캐릭터라는 말을 계속 들으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역할을 맡았고, 우아하면서도 차가운,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목소리였어요. 정해진 방식만 요구하기보다 성우가 느낀 표현을 폭넓게 받아주셔서 긴장하면서도 즐겁게 녹음했습니다.

신데렐라가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특강에 갔더니 절반은 주디를, 절반은 신데렐라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연차와 나이를 핑계로 서브컬처 문화의 영향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후배 성우들이 게임 캐릭터로 해외 행사에 초청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신데렐라의 인기를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신데렐라의 낭독이 무대에 올랐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한마음으로 환호해주셨어요. 저와 그레이브 성우가 등장했을 때 관객들이 환대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캐릭터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새로운 문화에 참여해 그만큼 사랑받았다면, 그 마음에 맞게 더 애정을 갖고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로미아를 녹음할 때는 《젠레스 존 제로》가 호요버스의 게임이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녹음 중 피드백을 받으며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았고, 드디어 호요버스 작품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기뻤어요. 공개 뒤에는 프로미아와 영어 듣기평가를 합성한 밈도 재미있고 감사한 마음으로 봤어요.

처음 프로미아의 모습을 봤을 때는 망토 안에 손이 결박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이야기를 접하며 많은 아픔 때문에 감정 표현을 닫은 인물이라는 걸 알고 애정이 생겼어요. 이전부터 차가운 인물을 연기하며 차가움 안에서 유머를 찾는 식으로 미묘한 결의 차이를 고민해왔기 때문에, 프로미아에서도 저만의 특성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이 적고 아픔을 간직한 차가운 캐릭터에 끌렸어요. 제가 그런 성격인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프로미아도 겉으로는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지만 시시아를 바라볼 때 말의 속도가 미묘하게 느려지고 관심을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 안에서 이 인물도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서브컬처 게임을 많이 맡고 싶어요. 이야기에 공을 들인 작품은 연기하는 사람도 깊이 빠져들게 하고, 그 곁에는 충성도 높은 팬들이 생기더라고요. 팬들과 동지가 된 듯한 감각은 어릴 때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CD와 화보집을 모으던 마음과도 비슷해요. 그 순수한 열정을 가진 분들과 더 많은 작품에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목소리에서 몸으로, 연기의 세계를 넓혀가다

저는 연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좋아서 성우를 택한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성우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배우의 연기로 영역을 넓히게 된 가장 큰 전환점은 《사이버펑크 2077》이었습니다. 두 달 동안 하나의 세계와 인물을 녹음하면서, 무대나 매체 연기로 범위를 넓히면 한 캐릭터 안에 온전히 빠져드는 시간을 더 깊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마흔을 넘긴 뒤 연기예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공연과 매체 연기를 배우고 지난해부터 촬영과 연극 무대에 도전했어요. 예상한 만큼 힘들었지만, 오디션에 합격해 무대에 오르며 성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은 활력을 얻었어요. 그곳에서의 공부가 성우 생활에도 새로운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촬영한 영상을 보면 파일을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제 모습이 싫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한 걸음씩 받아들이려 합니다. 성우가 배우의 연기를 할 때는 화술이 좋아 유리하다는 시선과, 목소리가 너무 성우 같아 화면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시선이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낍니다.

좋은 화술은 장점이지만, 화술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역할에서는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제 목소리를 바꾸거나 일부러 어눌하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신체와 표정, 감정을 충분히 끌어올려 목소리만 동동 떠다니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제 과제예요. 목소리가 좋은 만큼 나머지도 끌어올려 좋은 배우라는 말을 듣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새롭게 배운 연기 방법을 성우의 일에 적용하고, 막연했던 연기에 대한 생각도 더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어요. 그 내용을 성우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으니 두 작업은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라이언 레이놀즈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인상 깊게 봤고, 국내 배우 중에는 《폭싹 속았수다》의 학씨를 연기한 최대훈 배우를 좋아해요. 특히 최대훈 배우가 온몸을 쓰면서도 모든 움직임을 인물 안에 녹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많이 쓰면서도 그 움직임이 캐릭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배우들을 좋아해요. 저 역시 프레임 안에 갇히지 않고 온몸으로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전한다면 꿈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부족하니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가르치기 위해 다시 배우는 사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굉장히 어렵고, 처음에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도 배워야 하는데 누구를 가르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더 책임감을 갖고 공부할 테니, 공부하는 마음으로 함께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가르치는 일에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게 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배운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얻는 희열도 커요. 그 마음과 책임감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우를 꿈꾸는 분들에게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를 가진 학생은 잘 흡수하고 빠르게 성장하더라고요. 성우라고 하면 대부분 목소리를 바꾸는 기술부터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캐릭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어요. 감성과 감각을 키우고 몸을 먼저 다 쓸 수 있어야 원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 열정적이고 열린 태도로 임한다면 좋은 성우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익숙한 목소리로 남는다는 것

성우가 된 뒤 제 삶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꿈을 꾸면 이룰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고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작품을 하나씩 만나 좋은 반응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변했고, 대학원에서 연기의 확장을 꿈꾸며 지금은 배우로도 활동하게 됐어요.

누군가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남는 일은 저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어린 시절 저는 좋아하는 성우의 작품을 모두 찾아보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만큼 좋아했거든요. 이제 누군가 제 목소리를 알아봐 준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감동적이고 감사해요. 내가 왜 태어났을까 하는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놓치고 싶지 않은 기준은 자유롭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자유로운 연기를 하려면 언제나 엄청나게 노력하고 분석하며 미리 준비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매 순간 성실하게 작품을 분석하고, 현장에서 그만큼 해내는 성우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하는 태도는 죽을 때까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성우가 되기 직전의 저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꿈을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EBS 시험 한 달 전, 점집에서 성우가 되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듣고 시험을 보지 말까 고민했지만 한 달 뒤 합격했거든요.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네가 생각한 일을 행복하게 하라고 말할 거예요.

10년 뒤의 제가 지금을 본다면 새로운 제2의 청춘 같은 즐거운 시기를 살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지금은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지만, 그때 보면 한참 젊고 예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즐거운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칭찬해주면 좋겠습니다.

저를 팬이라고 말하며 다가와 주시는 분들을 보면 아직 어색하고 당황스러워요.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더 성장할 수 있어요. 받은 에너지를 다시 돌려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