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나는 나의 덕후여야 한다
제가 1987년생인데, 2000년대 초반 투니버스가 개국하면서 캐릭터와 만화가 정말 쏟아져 나왔어요. 첫사랑은 네티를 끝까지 알아보지 못하던 《천사소녀 네티》의 셜록스였고, 그다음에는 《봉신연의》와 《최유기》가 10대 중후반을 지배했습니다. 특히 《최유기》에는 오글거리는 중2병, 흑염룡 같은 감성이 있잖아요. 저도 일부러 고독한 늑대처럼 살면서 손등에 삼장을 그리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작품 제목을 써 다녔어요.
《최유기》를 그린 카즈야 미네쿠라 작가의 감성도 좋아했고, 삼장을 연기한 홍시호 선배님의 목소리를 정말 사랑했어요. 김승준, 강수진, 최원형 선배님도 좋아했고, 《봉신연의》의 양전을 연기한 구자형 선배님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봉신연의》에서 가장 좋아한 인물은 양정화 선배님이 연기한 달기였어요. 악역인데 제 장래희망이 거의 달기였습니다. 일본 소년 만화 특유의 허세가 있으면서도 너무 마이너해서 더빙되지 않은 작품들은 저만의 가상 캐스팅까지 만들었어요. 지금도 집에 있는 옛날 만화책을 보면 당시 선배님들로 직접 캐스팅해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작품도 공부할 겸 보지만 예전만큼 깊이 빠지지는 않더라고요. 《귀멸의 칼날》,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도 다 봤고 그나마 고죠 사토루가 가슴을 울렸지만 깊게 뿌리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옛날 작품을 다시 보고 또 봐요. 마치 기안84가 《태조 왕건》을 백 번 돌려보듯, ‘원나블헌’을 계속 보면서 업데이트 없이 과거에 묻혀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엇의 덕후이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미쳤나 봐’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을 매 순간 가지고 가는 게 필요합니다. 다만 그 덕질의 끝에는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나는 나의 덕후여야 합니다. 제가 엔플라잉을 오래 좋아한 것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들을 좋아하면서 제가 행복하고 그 마음 덕분에 살아지기 때문이에요.
10대 때 좋아한 문장들은 남들이 보면 오글거리고 창피할 수 있지만, 저를 외롭지 않게 하고 씩씩하게 만들어줬어요. 제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정당성을 부여해준 큰 힘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저를 버티게 한 기본 소양은 결국 그런 덕후적인 감성이었던 것 같아요.
사법시험과 무대를 지나 마이크 앞으로
강원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제가 가장 잘하는 것은 공부였고, 말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잘하는 공부로 좋아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제 꿈인 줄 알았습니다. 2006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모님의 감시에서 조금 자유로워졌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더 즐겨보기로 했어요. 그때 가장 좋아한 두 가지가 만화와 아이돌이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학교 축제가 있으면 혼자 무대에 올라가 보아의 춤을 추던 학생이었거든요. 춤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스물한 살에 YG 전속 댄서팀 크레이지의 모든 멤버에게 싸이월드 쪽지를 보냈습니다. 오디션이라도 볼 수 없겠느냐고 계속 보내다 답을 받았고, 합격해서 YG에서 2년 정도 댄서로 일했어요. 직업으로서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춤을 정말 좋아했고 사랑하던 아이돌과 함께 무대와 콘서트에 서는 것도 좋았어요. 하지만 20년 전의 막내 댄서에게는 생계수단으로 완전히 자리 잡기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는 한 우물을 파고 공부를 우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에 직업이나 제 적성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사법시험을 공부하면서야 변호사와 법조인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남을 대변하고 그들의 사건에 공감하며 함께 싸우는 일을 택했다면, 저는 매일 연기와는 다른 형태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아요. 공부를 잘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늦게 깨달았고, 그래서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은 계속 무대 위와 조명 아래, 카메라 앞에 있었던 것 같아요.
스물여섯에 아나운서 준비를 새로 시작하는 일도 당시에는 늦게 느껴졌어요. 복수전공이나 유학, 인턴 경험도 없었고 이제 발성과 발음을 처음 배운다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자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제 몸과 소리를 깊이 파고들어 연구했고, 1년 반 만에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어요.
성우 시험에서는 조금 꾀를 냈습니다. 저는 영상을 보거나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몇 초 안에 잘 울고, 또 금방 수습하는 편이에요. 울 만한 대본이 나오면 바로 울고, 심사위원이 다음 연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죠. 성우 학원으로 목표를 좁혀 공부한 지 한 달 만에 합격했습니다. 출발이 늦었던 만큼 준비 기간을 독하게 단축해 출발선을 조금이라도 맞추려고 했어요. 인생은 끼와 꾀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너무 세게 쥐고 있을 때
여러 길을 거쳐 성우가 됐을 때가 한국 나이로 서른이었어요. 저는 이 직업이 종착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활동하는 선배님들이 많으니 이제 직업을 전전하지 않고 ‘성우 이다슬’로 백 살까지 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팬으로서 꿈꾸기만 했던 디즈니의 성에 드디어 입성한다는 감상도 있었습니다.
둘 다 아니었어요. 둘 다 박살났습니다. 아나운서로 방송국 생활을 해봤지만, 전속 시절이 끝난 뒤 프리랜서라는 정글에 던져져 살아남는 일은 또 달랐어요. 제가 상상했던 디즈니 공주의 성보다는 철옹성에 가까웠습니다.
실패와 슬럼프는 인생에서 뺄 수도, 피해갈 수도 없어요. 저는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이 애틋합니다. 그건 그만큼 그 일을 좋아한다는 뜻이거든요. 성우 일이 저를 아프고 괴롭게 한 것도 너무 좋아해서 주먹에 구멍이 날 만큼 세게 쥐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출근한 날뿐 아니라 퇴근한 뒤와 일이 없는 주말에도 계속 ‘성우 이다슬’로 끙끙 앓았습니다.
의지만으로 손에 힘이 빠지지 않으니 다른 짐을 걸어보기로 했어요. 에너지를 분산하면 오히려 성우를 쥔 손에도 힘이 조금 빠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017년에는 요가 강사 자격증에 도전했고, 잘했던 공부를 살려 대학원에도 들어갔어요. 프리랜서 초반 일이 많지 않을 때는 예전에 했던 춤을 다시 꺼내 2만~3만 원도 되지 않는 수업을 찾아다니며 댄스 강사로 일했습니다.
요가와 대학원 공부, 다른 일에 에너지를 나누자 환기가 됐어요. 그 환기는 메타인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죽을 것처럼 힘들고 저에게만 있는 것 같던 불행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어져요. 성우의 세계가 저를 숨 막히게 하는 철옹성이었다고 해도,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조금은 감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요가 강사도 대학원생도 좋지만, 결국 제 정체성과 중심은 성우라는 사실도 확인했어요.
기가지니, 독이면서 무기가 된 목소리
기가지니는 성우 이다슬이 존재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기점이 맞아요. 그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렐을 맡으며 성우로서 자부심이 생겼고, 《더 위쳐 3》의 예니퍼를 만나면서 정체성이 잡혔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기가지니가 생기면서 존재감이 생겼습니다.
연기에서 제 안의 목소리는 재료이고, 중요한 것은 의도를 상대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듣는 사람이 이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정확히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제 목소리는 회색에 가까워요. 제 목소리를 듣고도 저인지 모르는 분이 있고, 제가 하지 않은 것을 듣고 ‘이거 너지?’라고 묻는 분도 많습니다. 색깔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저는 어디에든 잘 묻히고 스며들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기가지니도 그런 성질 덕분에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AI 음성은 성우에게 일종의 독이에요.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내 일자리를 잡아먹는 셈이니까요. 제가 기가지니 오디션을 보고 녹음하기 시작한 6~7년 전에는 계약 조건을 따지거나 AI가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상상할 환경조차 없었습니다. 일이 주어졌고, 성우로서 그 일을 했어요. 짧은 시간 안에 시대가 달라졌고 이제 성우뿐 아니라 많은 직업이 불확실성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디에서든 1퍼센트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미 《2020 원더키디》의 시대도 지나왔잖아요. 저는 기가지니를 무기로 그 1퍼센트에 들고 싶습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2040년쯤 인간이 달에 간다면, 그곳에서 한국인을 안내하는 음성이 제 목소리였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AI 이다슬의 음성이 우주를 정복하고 제가 죽은 뒤에도 지구에 남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기가지니라는 사실을 잘 몰랐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뒤에는 “나는 매일 지니와 이야기한다”, “우리 부모님도 늘 지니와 이야기한다”고 말해줬어요. 그들의 가족 안에 제 목소리가 잘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이 일의 시작에는 한 선배님의 추천도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존경하고 사랑한 유명한 여자 성우 선배님이 오디션 후보를 찾는 자리에서 저를 추천했다고 합니다. 제 목소리가 잘 어울리고 발음이 또렷하며 장시간 녹음도 잘 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대요. 녹음이 거의 끝난 뒤에야 그 사실을 들었는데, 말씀드리지 말라고 하셔서 아직 직접 감사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정말 감사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검푸른 토양처럼 남겨둔 갈브레나
요즘 이다슬이라는 성우를 들으면 《명조》의 갈브레나를 먼저 떠올리는 분이 많을 거예요. 시작은 오디션이었습니다. 모든 성우에게 열리는 오디션은 아니기 때문에, 녹음실이나 제작진이 캐릭터와 레퍼런스를 보고 잘 어울릴 것 같은 몇 사람을 추려 기회를 줍니다. 캐릭터 디자인을 처음 봤을 때 눈빛과 분위기, 의상까지 ‘이건 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어 음성과 다른 샘플을 들어봐도 제가 잘할 수 있고 꼭 맡고 싶은 인물이었습니다.
이미 예니퍼와 렐처럼 낮은 톤과 중저음의 가라앉은 인물을 연기해왔어요. 갈브레나는 색깔만 봐도 심해 같잖아요. 쨍한 에메랄드빛이 아니라 검푸른 색이에요. 그 분위기와 서사가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와 감정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캐릭터 자체에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다만 갈브레나를 만나기 직전 큰 애니메이션 주연과 유명 오디오북, 꼭 참여하고 싶었던 서브컬처 게임의 오디션에서 연달아 떨어졌어요. 캐릭터는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운과 기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두 달쯤 지나 거의 잊고 있을 때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서브컬처 게임 오디션 기회는 1년에 서너 번도 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명조》에 참여하고,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이야기에서 갈브레나를 맡은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게임을 녹음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녹음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어요.
갈브레나가 심심하고 캐릭터성이 약하다는 반응도 봤습니다. 악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부분에는 조금 의도한 바가 있었어요. 어린 시절과 성장한 뒤의 시간이 단절돼 있고, 키메라와 함께 고독하게 지내다 동료와 의지할 곳을 얻기 시작한 인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성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 건조하고 푸석하고 무던한 상태, 비닐하우스 안의 토양처럼 남겨두고 싶었어요. 나중에 그곳에서 어떤 꽃과 나무가 자랄지 열어두고 싶었습니다.
《명조》 2주년 행사에서는 갈브레나 코스프레를 한 분들을 제가 먼저 찾아다녔어요. 줄을 서서 “제가 갈브레나 성우인데 같이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나요?”라고 부탁하면 오히려 그분들이 놀라셨어요. 갈브레나가 오래 사랑받고 더 알려질 수 있다면 성우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조금 과할까요.
어렸을 때 좋아한 《세일러문》이나 《웨딩피치》처럼, 제가 연기한 유명한 캐릭터들의 피규어를 색깔별로 길게 전시하는 것이 꿈이에요. 지금은 팬들이 선물해준 갈브레나 피규어 대여섯 개가 작은 전시장을 채우고 있습니다.
게임을 할수록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선명해져요. 갈브레나, 예니퍼, 《붉은사막》의 데미안처럼 색이 탁하고 무거운 인물을 비교적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아직 해보지 않은 것들도 보여요. 소년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힘이 있으면서 조금 섹시한 인물도 즐겁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도형 선배님이 이제 제 색깔이 확실히 잡히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지만, 무겁고 어두운 인물뿐 아니라 귀엽고 밝은 역할도 주어지면 해낼 수 있습니다. 아직 여러분의 작품에 이다슬이라는 이름이 없다면 편하게 불러주세요.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숨을 잘 쉬었다면 잘 쉰 하루
성우로 앉아 있는 지금도 이다슬에게서 요가를 뺄 수는 없어요. 댄서를 그만둔 뒤 마음의 헛헛함과 몸의 찌뿌둥함을 해소하려고 시작했습니다. 20년 전에는 한국에서 요가가 지금처럼 자리 잡기 전이라 옥주현 씨가 하는 운동 정도의 이미지였어요.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우울해지고 원형탈모까지 왔을 때 관악청소년센터의 월 2만 원짜리 수업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처럼 시작했는데, 지금은 강사로 활동하고 저만의 요가 방식을 만들고 싶을 만큼 성우 다음으로 큰 영역이 됐습니다.
오랫동안 제 카카오톡 소개 문구가 ‘몸 건강, 마음 건강’이었어요. 요가는 여성의 미용 운동으로만 받아들여질 때가 있지만,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운동이자 수련입니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핀 뒤 흘려보내고 다시 집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요. 성우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습니다.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와 남도형 선배님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업할 때 초반에는 반드시 신체 훈련을 해요. 요가를 접목한 호흡과 스트레칭입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호흡이라는 배에 나의 음색이라는 화물을 싣고 상대에게 정확한 거리로 보내는 일이잖아요. 요가는 몸 구석구석을 이해하고 호흡을 그곳으로 보내는 일을 도와줍니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마다 어디에 힘을 줄지 고민하는 것보다, 아침마다 한 시간 정도 요가와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훨씬 도움이 돼요. 변성, 표현, 지구력과 폭발력까지 모두 발전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우를 지망한다면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호흡을 제대로 비우고 들이마시는지, 한숨처럼 꺼지지는 않는지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해요.
저는 ‘쉰다’와 ‘숨 쉰다’가 거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 숨을 잘 쉬었다면 잘 쉰 거예요. 숨이 막히고 언제 호흡하는지도 모를 만큼 가쁘고 답답했다면 몸과 마음이 쫓기고 힘들었던 날이죠.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바쁘지만 즐겁게’입니다. 몸이 아무리 바빠도 호흡을 들여다보면 마음에 작은 구멍과 여유가 생기고, 그날을 즐길 수 있게 돼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뒤 사람들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많이 물었어요. 저는 한 가지로 답합니다. 출연할 때는 6잡러였는데 작가라는 일곱 번째 직업이 추가됐다고요. 첫 책 《안녕하세요, 프로 N잡러입니다》는 자기소개에 가까운 에세이였어요.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며 저처럼 여러 일을 하거나, 한 분야만 깊게 파는 스페셜리스트와 달리 여러 분야를 두루 다루는 제너럴리스트로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120세 인생과 불확실성의 시대잖아요. 여러 직업에 발을 걸쳐두는 일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두 번째 책으로는 좀 더 넓은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누구나 프로 N잡러가 된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아나운서와 성우로 12년 넘게 일하고 학생을 가르친 경험을 담은 보이스 스피치 책을 쓰고 있어요. 호흡과 마음 수련, 몸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도 그 안에 담을 예정입니다.
신뢰할 수 있고 설렐 수 있는 목소리
2026년 현재 정확히 10년 차가 됐어요. 갓 합격했을 때는 실력과 목소리의 개성에만 집중했습니다. 어디에서 들어도 ‘이건 이다슬이다’라고 알아볼 수 있는 원톤의 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제 목소리에 그런 개성이 없다면 무엇을 밀고 나가야 할지 집착했어요.
10년쯤 지나고 보니 실력만큼 인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자체가 좋아서 그 사람의 말과 내레이션이 더 좋게 들리는 순간이 있어요.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이어서 그 사람의 말도 좋게 들리고 어디에든 잘 스며들며 묻어나는 목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성우가 되기 전에도 30년의 시간이 있었어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더라도 감히 개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10대의 저에게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고 알아서 살게 둘 거예요. 20대의 저에게는 방황을 조금 줄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영화 《어바웃 타임》이나 《나비효과》처럼 작은 개입이 더 나쁜 길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그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것 같아요.
서른에 성우가 된 일은 가끔 아쉬워요. 조금만 빨리 합격해서 10년 차인 지금 서른다섯 정도였다면 좋았겠다고 사석에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헤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꽤 괜찮은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쉰 살의 저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직업이 한두 개 더 늘어 있을 수는 있겠죠. 노래가 평생의 콤플렉스라 오랫동안 배우며 제 노래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고,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도 쓰고 있어요. 쉰 살의 저는 마흔에도 치열하게 살았던 저에게 “네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꽤 괜찮다, 고맙다”고 하지 않을까요.
아직 목소리와 이름을 많이 알리지는 못했지만 서브컬처 게임과 애니메이션 안에서 신뢰할 수 있고 설렐 수 있는 목소리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다슬이 캐스팅됐대. 벌써 설렌다. 믿고 들을 수 있어. 다른 어떤 언어와 비교해도 한국어 음성이 분명 최고일 거야’라고 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성우가 되고 싶습니다. 훗날에도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성우가 이런 자리에서 팬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